[미디어로 보는 협동조합] ① 협동조합의 클라쓰
경기도 사회적기업·협동조합 통합지원기관인‘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세상’은 일반 시민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협동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도록 ‘미디어로 보는 협동조합’ 기획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한다면 담금질을 한 무쇠처럼 더 단단해 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고통을 통해 단단해진 무쇠보다는 고통에 의해 잘게 쪼개져버린 모래알들이 더 많다. 그리고 그 모래알들이 모인 현실의 사막에서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꿋꿋이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이다처럼 청량한 대리만족을 선사하여 준다. 그래서인지 사는 것이 점점 더 각박해지는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현실의 벽에 막혀 자신의 소신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의 반란이다. ‘환자보다 이윤이 먼저라면 폐업이 답’이라고 말하는 낭만적인 의사의 이야기라던가 구단주와 척을 지면서도 자신의 운영원칙대로 꼴찌 야구팀을 바꾸어나가는 신임 단장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열광하는 드라마에는 각박한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이 담겨있다. 그리고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 또한 두드릴수록 더 단단해 진다는 OST의 노랫말처럼 거듭되는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삶의 모습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태원 클라쓰’는 광진작가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청춘들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장가’라는 거대 프렌차이즈 기업을 상대로 대결하는 중졸 전과자 박새로이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박새로이의 영웅적인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드라마를 통해 얻는 대리만족은 현실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극중에서도 고답이(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이를 가리키는 신조어) 같이 타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모습은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닌 설화라고 생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그저 낭만적인일,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며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허구의 일처럼 이 드라마가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러한 모습은 묘하게 현실의 협동조합과 닮아있다. 박새로이는 극중 ‘장사는 사람이다’라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동료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자신의 포차인 ‘단밤’을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다문화자녀. 한부모자녀, 갱생보호대상자, 성소수자까지, 사회의 소외된 자들이 동료로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단밤포차에서 일을 하고 함께 운영해나간다. 이러한 단밤포차의 모습은‘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사체’인 협동조합과 닮아있다. 억지스러운가? 그럴 수 있다. 사실 동네에 있는 은행이나 마트정도로 협동조합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약자들이 모여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나아가 지역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이해한다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모습이 단밤포차에 겹쳐 보일 것이다.
사람 중심의 협동조합
단밤포차는 그 구성원에서부터 특이점이 찾아온다. 갱생보호대상자, 트랜스젠더, 다문화가정의 자녀, 한부모가정의 자녀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소위 취약계층이 단밤포차의 식구들이다. 개인의 배경이나 스팩이 아닌 자신의 소신대로 살고 싶다는 공통의 목표를 기준으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가입의 기회를 준 탓이다. 가입 기준이 이러니 단밤포차에서는‘소주로 가글을 하고 싶은 맛없는 요리’를 만드는 단밤포차의 직원에게도 해고 대신 월급을 2배로 주고 더 노력하라고 하며 스스로 떠나지 않는 한 해고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신뢰에 영향을 받은 직원‘마현희’는 TV요리 대회에 나가 우승까지 거머쥐게 된다. 또한, 사장인 박새로이는 항상 직원들과 함께 사업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 단밤포차는 주식회사가 되는 과정에서도 모든 직원의 이야기를 수렴하였고 그 직원들이 직접 투자하여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사람을 쉽게 해고하지 않고 사람을 존중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이 사람 중심의 비즈니스를 한다고 말한다. ‘불황에도 해고하지 않는 기업’, ‘모두가 평등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이 협동조합의 이명(異名)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정말 우리 현실에 이런 기업이 있는가? 의문이 든다. 단밤포차는 드라마니까 비합리적이지만 낭만적인 행동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취약계층이 주인이 되어 해고도 하지 않으며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일을 진행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있다. 협동조합은 실제로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모든 협동조합은 출자한 금액 아닌 1인 1표의 원칙에 근거하여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인종, 성별,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이는 협동조합의 목표가 이윤이 아닌 조합원 공동의 필요 실현에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필요가 안정적인 일자리라면 기업의 위기에서 인건비를 줄이거나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교육하고 직무를 개발하여 적절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협동조합의 목표가 된다. 즉 돈 보다 사람이 중요한 기업이 바로 협동조합인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협동조합
단밤포차가 기존 건물주의 갑질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였지만 그곳은 상권이 죽어 유동인구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단밤포차가 행한 첫 행동은 옆 가게를 돕는 일이었다. 메뉴판을 정리하여주고 식기구를 정비해주는 일은 약육강식이라는 경쟁의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단밤포차는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협동이란 인간의 본성과 죽은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혼자 잘되는 것이 아닌 주변 상권 모두가 부흥해야 한다는 사업전략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단밤은 대기업 IC주식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지역에 기부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지역과 함께 성장한 것이다.
협동조합 7원칙 중 하나는 지역사회에 대한 이바지이다.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은 상호부조이며 이는 곧 인간의 오랜 전통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부상조의 공간적 배경은 품앗이와, 계처럼 언제나 그 지역사회가 된다. 게다가 지역사회는 협동조합의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조합원들과 미래의 조합원들이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역사회는 협동조합의 생존에 필수적인 곳이다, 결국 협동조합은 그 정체성부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이며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역사회와 함께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의 모든 협동조합의 정관에는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혹시 관심이 조금 생겼다면 초록 검색창에서 협동조합과 관련된 최근 뉴스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코로나 사태로 일부 기업들이 마스크 사재기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동안 협동조합이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즉 협동조합은 지역과 함께하는 기업이고 그렇기에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인 것이다.
17,000여편의 이태원 클라쓰를 응원한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주식회사인 단밤포차를 협동조합이라는 안경을 쓰고 코에 붙이면 코걸이인냥 확대해석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염려도 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왜 단밤포차는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를 선택하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참 어렵다. 협동조합을 컨설팅 하는 측면에서는 장가를 이기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하였고 민간의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서는 주식회사가 좋을 수 있다고 말할 것 같다. 사실 협동조합의 사회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투자자는 금전적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게 맞다. 다른 한편으로 시청자 입장으로는 작가가 협동조합을 은행이나 마트로 알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심으로 답할 것이다. 물론 작가가 알더라도 시청자들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을 드라마에 넣는 위험을 감수하긴 쉽지 않다. 결국에는 투자자도 시청자들도 그리고 작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며 사이다와 같은 위안을 얻는 드라마들이 전국에 17,000여편이 있다. 드라마처럼 누가 응원하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사람과 지역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새로이들이다.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꿈과 지역과 사회를 위해 살고 싶다는 열정이 아직 남았다면 협동조합의 가치를 알아봐주길 소원한다.
우리사회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예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바로 협동조합입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협동조합의 참된 예쁨을 느끼는 그 날까지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세상은 협동조합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